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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기술, 일상 물건에 담긴 사라진 이야기

  • 2025. 5. 1.

    by. moneylab153

    목차

      작고 얇았지만 시대를 담은 기억 – 플로피디스크라는 이름의 역사 

      한때는 모든 컴퓨터 책상 위에 당연히 놓여 있던 그것.
      가볍고 얇으며 사각형의 납작한 몸체, 중앙엔 금속 디스크가 반짝였고,
      구석에는 조그마한 쓰기 방지 스위치가 있었던 저장 매체.
      바로, 플로피디스크(Floppy Disk)입니다.

      요즘 세대에게 플로피디스크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저장(Save)’ 버튼의 아이콘으로만 존재하는 낯선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때는 이 작은 사각형이 전 세계의 디지털 자료, 업무 보고서, 과제 파일, 심지어 연애편지까지 품고 다녔던
      가장 중요한 정보 이동 수단이자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연 기호였습니다.

       

      플로피디스크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처음 개발된 건 무려 1971년 IBM에서였죠.
      초기에는 8인치 크기로, 단지 몇십 KB밖에 저장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5.25인치, 3.5인치 등 작고 단단한 형태로 진화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진화형이자 가장 널리 쓰였던 모델이 바로 3.5인치, 1.44MB의 플로피디스크였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컴퓨터는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FDD)를 기본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USB도, 외장하드도, 클라우드도 없던 시절.
      이 납작한 디스크 한 장에 문서, 사진, 게임 세이브 파일, 윈도 부팅 디스크까지 넣어서 사용하던 것이
      일상의 당연한 풍경이었죠.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플로피디스크는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최초의 ‘정보를 담는 개인 소유물’,
      누구나 데이터를 ‘휴대’할 수 있다는 개념을 만들어낸 디지털 개인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파일, 디지털 공간, 작업물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죠.

       

      물론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1.44MB는 터무니없이 작은 용량입니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도 담기 어렵고, 단순한 워드 파일 몇 개로도 가득 찹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 1.44MB가 작은 하드디스크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하드디스크가 고장 나면 부팅 디스크로 시작하고,
      게임을 하다가 ‘저장 슬롯’이 없으면 플로피에 직접 세이브 파일을 따로 저장해 가며
      삶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던 시대의 필수품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리포트를, 회사원은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디자이너는 심플한 일러스트 파일을 담아 다녔습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아직 태동기에 있던 시절,
      플로피디스크는 가장 신뢰받는 정보의 운반 수단이자,
      작은 개인 데이터의 보물 상자
      였던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이 작은 디스크 한 장이
      단순한 구식 매체가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감각과 기술적 상상력이 응축된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작은 용량에 열광했을까?
      우리는 플로피디스크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남겼을까?

      이 글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1.44MB의 시대,
      그 속에 담긴 작고 소중한 기억의 무게를 함께 되짚어보려 합니다.

      플로피디스크의 시대 – 1.44MB로 우리는 무엇을 담았을까?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1.44MB는 정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용량입니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도 저장되지 않고,
      웹사이트의 로딩 이미지 한 페이지에도 수십 배 이상의 데이터가 사용되니까요.
      하지만 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1.44MB는 작지만 강력한 디지털 보물 상자였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첫 개인화 도구

      플로피디스크가 진짜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개인 데이터를 휴대할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저장 장치였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까진 대부분의 정보가 하드디스크 안, 즉 컴퓨터 안에만 머물러 있었고,
      사용자 간의 정보 교환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플로피디스크 덕분에 우리는

      • 내 문서
      • 내 사진
      • 내 과제
      • 내 게임 저장파일
        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디지털 공간의 ‘개인 소유’ 개념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 일대 전환이었습니다.

      무엇을 담았을까?

      1. 리포트와 과제 파일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플로피디스크는 ‘과제 제출용 필수템’이었습니다.
        워드로 작성한 리포트나 파워포인트 발표자료를 저장해 컴퓨터실로 가져가 출력하던 기억,
        플로피가 손상되었을 때의 공포감은 지금의 USB 분실보다도 더 심각한 사고였습니다.
      2. 게임 세이브 파일
        당시에는 하드디스크에 게임을 설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저장 슬롯’ 개념이 제한적이라 플로피디스크에 직접 세이브 파일을 따로 백업해둬야 했습니다.
        하나의 디스크에 3~4개의 게임 데이터를 겨우 넣고,
        잘못 덮어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죠.
      3. 부팅 디스크 및 드라이버
        운영체제가 손상되거나 포맷을 해야 할 때,
        윈도 95/98 설치 디스크가 담긴 플로피 시리즈가 꼭 필요했습니다.
        컴퓨터 부팅에 실패했을 때는 ‘부팅 디스크’를 플로피로 넣어 DOS 환경에서 복구를 시도했죠.
      4. 잡지 부록 콘텐츠
        1990년대 컴퓨터 잡지에는 부록으로 ‘플로피디스크’가 자주 제공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시범 프로그램, 미니게임, 데스크톱 배경화면, 사운드 효과 등
        작고 재미있는 디지털 콘텐츠들이 담겨 있었죠.
      5. 일기장 혹은 ‘비밀 파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개인 파일들을 ‘숨기기 위한 용도’로도 플로피디스크는 쓰였습니다.
        폴더명을 “Win.sys”처럼 바꾸거나, 디스크 이름을 ‘시스템 백업’으로 지정하는 식의
        소소한 정보 은폐 기술은 많은 10대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기도 했죠.

      1.44MB의 창의력

      지금은 단순한 이미지 하나도 3~4MB를 넘어서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단 1.44MB 안에

      • 한글 문서 수십 개
      • 압축된 음악 파일(초창기 MP2나 MIDI 형식)
      • DOS 게임 1개
      • 이미지 파일 몇 장
        까지 모두 담기 위해 정교한 폴더 관리와 압축 기술을 익혀야 했습니다.

      ‘용량 절약’은 곧 ‘파일 관리 능력’이었고,
      하드디스크 용량이 1GB도 안 되는 컴퓨터에서,
      플로피디스크는 일시적 백업 장치이자 이동식 라이브러리였습니다.

      그 작은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알집(ZIP), ARJ, RAR 등 다양한 압축 포맷과 분할 압축 기술이 등장했고,
      디스크를 여러 장으로 나눠 사용하는 ‘다중 디스크 백업’도 일상적인 일이었죠.

       디지털 ‘불안정성’을 감내하던 시대

      물론 플로피디스크는 완벽한 저장 장치는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자성을 띤 물체 근처에 두면 데이터가 날아가기도 했고,
      자주 쓰다 보면 디스크가 마모되거나 파일이 깨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매번 복사본을 만들어두고, 중요한 파일엔 별도 백업을 해두며
      ‘디지털 데이터의 유한함’을 실감하고, 신중하게 다루는 습관을 배워갔습니다.

      디지털이 오늘날처럼 무한정 복사되고 삭제되는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일종의 자산이었던 시기.
      그 중심에 플로피디스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1.44MB는 정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용량입니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도 저장되지 않고,
      웹사이트의 로딩 이미지 한 페이지에도 수십 배 이상의 데이터가 사용되니까요.
      하지만 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1.44MB는 작지만 강력한 디지털 보물 상자였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첫 개인화 도구

      플로피디스크가 진짜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개인 데이터를 휴대할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저장 장치였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까진 대부분의 정보가 하드디스크 안, 즉 컴퓨터 안에만 머물러 있었고,
      사용자 간의 정보 교환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플로피디스크 덕분에 우리는

      • 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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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게임 저장파일

      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디지털 공간의 ‘개인 소유’ 개념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 일대 전환이었습니다.

      기술의 전환점 – USB와 클라우드가 덮은 납작한 기억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플로피디스크는 여전히 대세였습니다.
      컴퓨터마다 FDD(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기본 탑재돼 있었고,
      학교, 사무실, 정부 기관 등 모든 장소에서 표준 저장 매체로 통용되었죠.
      하지만 기술은 조용하고도 강력하게, 그 납작한 기억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세대 충격: USB의 등장

      2000년대 초, USB 플래시 드라이브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8MB, 16MB 정도의 작은 용량이었지만
      곧장 128MB, 512MB, 1GB를 거쳐 단숨에 플로피디스크의 수백 배 용량을 제공하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USB는

      • 되감을 필요로 하지 않고
      • 파일 읽기/쓰기 속도가 빠르며
      • 자성에 덜 민감하고,
      • 수천 번 이상 반복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물리적 우위 덕분에 USB는 플로피디스크를 대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과제를 USB에 저장해 바로 출력했고,
      사무직은 보고서를 USB에 담아 회의실로 옮겼으며,
      기술자들은 소프트웨어 설치 파일을 플로피 10장 대신 USB 하나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새로 나오는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FDD가 아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대신 USB 포트가 2개, 4개, 심지어 6개까지 장착되며
      플로피는 ‘지원되지 않는 저장매체’가 되어버렸죠.

      2세대 전환: 클라우드의 부상

      USB의 등장만으로도 플로피는 거의 퇴출 수순을 밟았지만,
      진짜 결정타는 인터넷 기술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발전이었습니다.

      • 네이버 N드라이브, Dropbox, 구글 드라이브, OneDrive 등은
        단지 저장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접속 가능한 ‘연결된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물리적으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자신의 파일을 어디서든 꺼내 쓸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심지어 협업까지 가능해졌습니다.

      USB가 물리적 휴대를 더 편리하게 해 준 저장장치였다면,
      클라우드는 '공간’ 자체를 디지털로 대체해 버린 개념이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용량의 한계도, 장치의 종류도, 운영체제의 구분도 점점 무의미해졌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라진 것들

      기술 발전은 항상 편리함을 선사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감정적 풍경 몇 가지를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 ‘디스크가 꽉 찼습니다’라는 알림을 보며 고민하던 저장 전략
      • 여러 장의 플로피에 나눠 저장하던 긴장감
      • 저장하기 전에 파일을 열어 확인하던 조심성
      • 중요한 파일은 두 장, 심지어 세 장으로 백업하던 불신 속의 지혜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자동저장’, ‘자동백업’, ‘자동동기화’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그만큼 파일을 ‘내 것’으로 느끼는 감각도 흐릿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작은 플로피 한 장에도
      나의 이름을 붙이고, 스티커를 붙이고, 제목을 정해 구분했지만
      지금은 수십GB의 클라우드 안에 수천 개의 파일이 흘러 다니며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도 잊히기 쉬운 상태로 존재하곤 합니다.

      기술은 진보했지만, ‘기억의 방식’은 바뀌었다

      플로피디스크의 시대는 분명 불편했습니다.
      느렸고, 깨지기 쉬웠고, 용량은 너무 작았죠.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을 넣을지 더 많이 고민하고, 정리하고, 신중하게 접근했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용량 걱정은 줄었지만,
      파일을 아무렇게나 저장해 놓고는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디지털 기억이 넘쳐날수록, 진짜 기억은 빨리 휘발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플로피디스크는 기술적으로는 낙후됐지만,
      그 속에 담긴 ‘기억의 태도’는 지금도 되새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정보의 무게를 알고,
      • 기억을 위해 공간을 열어두고,
      • 기술보다 감정을 앞세우던 시절.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디지털 ‘불안정성’을 감내하던 시대

      물론 플로피디스크는 완벽한 저장 장치는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자성을 띤 물체 근처에 두면 데이터가 날아가기도 했고,
      자주 쓰다 보면 디스크가 마모되거나 파일이 깨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매번 복사본을 만들어두고, 중요한 파일엔 별도 백업을 해두며
      ‘디지털 데이터의 유한함’을 실감하고, 신중하게 다루는 습관을 배워갔습니다.

      디지털이 오늘날처럼 무한정 복사되고 삭제되는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일종의 자산이었던 시기.
      그 중심에 플로피디스크가 있었습니다.

      플로피디스크가 남긴 문화적 흔적들 – 아이콘, 메타포, 향수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 문서를 작성하다가 ‘저장’ 버튼을 누를 때 어떤 아이콘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엔
      작고 정사각형에 구멍이 하나 뚫린 회색 아이콘이 자동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바로 플로피디스크의 형상,
      지금은 실물로 보기조차 어려운 그 매체가 여전히 우리의 기억과 인터페이스 속에 살아 있다.

      “저장”을 상징하는 유령 – 아이콘으로 살아남다

      오늘날 모든 워드프로세서, 그래픽 프로그램, 이메일 서비스,
      심지어 스마트폰 앱에서도 저장 기능을 나타내는 버튼에는
      여전히 플로피디스크 아이콘이 쓰이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아이콘의 실제 기능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대조차
      그 도형을 보면 ‘저장’을 떠올린다는 점이다.
      즉, 플로피디스크는 물리적 기능을 떠나,
      디지털 시대의 개념적 상징으로 전환된 최초의 저장매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기술은 기능을 넘어 언어가 되고, 상징이 되고, 문화가 된다.
      플로피디스크는 바로 그런 진화를 이룬 희귀한 사례 중 하나다.

      메타포로서의 플로피디스크 – ‘작지만 귀중했던 것’

      플로피디스크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은유(metaphor)가 되었다.
      ‘작은 크기, 제한된 용량, 하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은 그 무엇’이라는 상징은
      문학,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감정적 메타포로 사용된다.

      • "그 사람은 내 기억 속의 플로피디스크 같은 존재야."
      • "우리 관계는 1.44MB도 못 담을 만큼 가벼웠나 봐."
      • "되감지도 못하고 삭제도 못하는 감정, 마치 플로피 같았어."

      이처럼 플로피디스크는 기술의 유물임과 동시에
      불안정하지만 소중했던 디지털 초창기 정서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향수와 뉴트로 감성 – 다시 돌아온 플로피

      요즘 Z세대, 알파세대 일부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 낡은 저장매체가 ‘힙한 빈티지 아이템’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이른바 ‘뉴트로(Newtro)’ 감성의 유행 속에서
      플로피디스크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 패션 소품: 플로피 모양의 열쇠고리, 가방 참 장식, 노트북 스티커
      • 인테리어: 플로피를 벽에 장식하거나, 조명 박스로 재구성
      • 굿즈 상품: 감성 문구류, 노트, 컵받침
      • 디자인 영감: UI/UX 디자인에서 ‘레트로 감성’ 강조 시 아이콘 채용

      이러한 현상은 단지 복고 유행이 아니다.
      기억이 깃든 물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애착,
      그리고 기술이 너무 빨리 진화하면서 생긴 감정적 결핍을 채우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문화 기록물로서의 가치 – 디지털 고고학의 단서

      최근 몇 년 사이, 문화 연구자들과 박물관, 아카이브 센터 등은
      플로피디스크를 단지 저장매체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디지털 문명의 흔적이자 고고학적 기록물이다.

      • 누군가의 첫 워드 문서
      • 사라진 기업의 회계 장부
      • 익명의 작가가 남긴 미완성 소설
      • 소년의 게임 저장 파일
      • 1999년 졸업작품, 2001년 이력서 초안, 1996년 첫 연애편지

      이 모든 것이 플로피디스크 안에 남아 있고,
      그중 일부는 복원될 수 있으며,
      또 일부는 이미 영원히 사라졌다.

      그렇기에 플로피는 인간 기억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보여주는 도구이자,
      디지털 감정의 증거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이콘은 사라져도, 의미는 남는다

      플로피디스크는 기술적으로 완전히 퇴장했지만,
      그 상징성과 감정성, 문화성은 여전히 현대인의 무의식에 깊이 박혀 있다.

      어떤 세대에겐 그것이

      • 어릴 적 컴퓨터실의 냄새를 떠오르게 하고,
      • 밤새 쓴 리포트를 옮기던 긴장을 떠오르게 하며,
      • 친구에게 게임 세이브 파일을 주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기술은 반복되지만, 감정은 진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플로피디스크를 기억하는 방식은,
      단지 매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나의 순간과 시대를 함께 기억하는 것
      이다.

      디지털 유산으로서의 플로피디스크 – 지금 우리가 되짚어야 할 이유 

      플로피디스크는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현대 컴퓨터에는 아예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고,
      USB조차 클라우드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시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플로피디스크를 되짚어야 할까?
      이미 사라진 기술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

      우리는 종종 ‘사라졌으니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사라져도, 그 기술이 남긴 흔적과 문화, 감정과 습관은 오랫동안 인간 속에 남습니다.
      플로피디스크는 단지 저장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억을 다루는 방식, 정보를 교환하는 질서, 디지털을 처음 경험한 세대의 감정 구조를 결정했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무의식 중에 ‘저장’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
      그 행위의 아이콘으로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말하면, 플로피는 기술이 아니라 기호가 된 셈입니다.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의 유한성 인식

      오늘날 우리는 클라우드, SNS, 데이터센터, AI를 통해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주고받고 저장하며 살아갑니다.
      언제든 삭제할 수 있고, 언제든 복원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기억’의 가치, ‘정보’의 무게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플로피디스크는 디지털도 결국 유한하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용량은 작았고, 마모에 취약했으며, 잘못 저장하면 복구가 어려웠습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정보를 더 신중하게 다루고, 더 정성스럽게 구성하며, 더 조심스럽게 보관하려 했습니다.

      디지털이 무한하다고 착각하기 쉬운 시대에,
      플로피는 유한한 디지털의 상징이자 경고판입니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감각은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철학일지도 모릅니다.

      기억의 물리성: 손으로 만졌던 데이터

      플로피디스크는 정보를 손으로 만졌던 마지막 저장매체였습니다.

      • 꺼내고,
      • 넣고,
      • 쓰기 방지 탭을 조정하고,
      • 레이블에 제목을 쓰고,
      • 종이에 써 붙인 ‘내 파일 목록’을 참고하며 데이터를 정리했던 시간.

      오늘날의 파일들은 대부분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짜 소유한 것인지, 단순히 접근만 하는 것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플로피디스크 시절의 데이터는 명확했습니다.
      그건 손에 쥘 수 있는 것이었고, 고유한 공간을 차지했고,
      내가 잘못 보관하면 망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루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바로 그 물리성이, 정보와의 관계를 더 주체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전해줄 '디지털 원형'

      플로피디스크는 디지털 문명의 초석이었습니다.
      지금의 거대한 IT 인프라와 클라우드 기반 사회는
      이 작고 느린 디스크에서 시작된 개념들 –
      개인 데이터, 정보 이동성, 저장과 백업, 포맷과 복원에서 출발한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플로피디스크를 디지털 유산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디지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증명하는 문화적 시점이며,
      미래 세대에게 ‘디지털을 인간답게 다루는 방식’을 전수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이름

      플로피디스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정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됩니다.

      • 더 빠르고
      • 더 편리하고
      • 더 자동화된 시대 속에서

      플로피디스크는 묻습니다.
      “당신은 정보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당신에게 데이터란 무엇인가요?”
      “기억은, 손에 쥐었던 적이 있나요?”

      작지만 묵직했던 1.44MB의 공간. 그 안에는 기술의 진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 감정, 문화가 함께 담겨 있었음을, 이제는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